70년전 울산

입력 2002-08-07 00:00:00 조회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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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70년 전인 1930년 초반 울산에는 14만여명의 인구에 자동차는 23대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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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당시 유일했던 북정동 울산유치원의 입학금은 1원. 월사금은 50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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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최근 발견된 울산군 향토지 내용을 김잠출 기자가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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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문화유산 해설사인 윤대헌씨가 입수한 울산군 향토지는 만주사변 직후인 1933년, 일본인 5명으로 구성된 울산교육회가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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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역사와 문화,자연지리등 총 5개장,200여쪽 분량으로 등사판에다 색채지도 4장을 삽입했습니다.

 <\/P>(C\/G-1-지도촬영)

 <\/P>리단위까지 상세히 표기된 지도는 울산만을 모두 일본해로 표시하고 삼산비행장을 상세도로 별도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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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일본 후쿠오카와 서울을 매일 1회 비행하고 동경과 중국 대련을 연결했다는 내용은 울산이 중일전쟁 직전 일제의 물자수송 기지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C\/G-2)

 <\/P>강동과 상북등 울주군 전 지역에 호랑이가 있고 지금의 장생포인 대현면이 고래산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P>(C\/G-3)

 <\/P>당시 울산읍장 월급은 150원,16개 면장은 39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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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지방의원은 울산읍이 12명, 각 면의회는 10명으로 구성됐습니다.

 <\/P>(C\/G-4)

 <\/P>1933년 당시 울산의 총가구수는 2만 7천여가구로 일본인이 963가구, 기타 외국인이 9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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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인구는 14만 4천여명, 이 가운데 일본인은 3천 400여명, 외국인은 30명입니다.

 <\/P>(c\/g-5)

 <\/P>주민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한 반면 일본인은 모두 공무원과 금융등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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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당시 이혼사례를 보면 울산읍에서만 8쌍일뿐 각 면은 전혀 없거나 2명으로 파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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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인구증감 조사결과 해안지방 인구가 감소하는데 이는 제주해녀들이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풀이해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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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이밖에 울산지방의 모심기 노래를 비롯한 민요와 전설, 울산 특유의 방언을 조사해 한글로 기록하는등 울산 향토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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