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울산MBC 라디오 <김연경의 퇴근길 톡톡> 표준FM 97.5(18:10~19:00)
- 진행 : 김연경 앵커
- 대담 : 유희정 취재기자
- 날짜 : 2022년 6월 22일 방송
취재수첩 시작하겠습니다. 울산MBC 보도국 유희정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민선 8기 울산 지방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짚어보는 연속 기획, 이번 주에도 이어 갑니다.
앞서 2주 동안 울산의 도심융합특구 사업과 역세권 개발 사업에 대해 짚어 봤죠? 이 내용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 울산MBC 뉴스 채널에서 퇴근길톡톡 다시보기 영상을 통해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1. 오늘이 세 번째 시간인데요. 이번에는 산업도시, 대기업의 집결지, 그래서 부자 도시로 알려져 있는 울산의 실상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울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참 많죠?
울산에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이 정말 많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자동차, 조선 관련 대규모 기업들이 분포하고 있고, SK나 에쓰오일 등의 석유화학 기업들도 포진해 있습니다. 중견 기업도 다양한 업종에서 울산에 생산 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울산에 공장이나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울산에 본사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면서요?
울산에 본사를 뒀는지 여부를 전부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서, 주식시장에 정식 상장돼 본사 주소를 알 수 있는 곳을 기준으로 확인해보면요. 울산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 중 상장기업은 46개입니다. 이 중 울산에 본사를 둔 기업은 25곳으로 절반 정도입니다. 기업 규모로 보면 성적이 더 좋지 않습니다. 대기업 중에서는 롯데정밀화학과 현대미포조선만 울산에 본사를 두고 있고요. 나머지 대기업들은 주로 서울 등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3. 기업들이 왜 울산에 본사를 두지 않는 걸까요?
애초에 기업 자체가 사업활동을 타 지역에서 시작해 울산으로 진출한 경우에는 울산에는 공장 등 생산기지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사업을 울산에서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본사를 타 지역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옮겨가는 본사는 대부분 수도권에 몰린다는 겁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국내 재계 서열 상위 40대 그룹, 이른바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1천700여 개가 본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이 회사들의 52.1%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었습니다. 경기(18.8%), 인천(3.2%)을 포함할 경우 수도권에 위치한 대기업 소속 회사의 비율은 74%가 넘어가는데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기업과 관련 기업들 중 3/4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4. 이렇게 되면 지역에서는 당장 일자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이건 대기업이 왜 울산 등 지역으로 이전하지 않는가를 따져봐야 하고, 동시에 산시설이 울산에 있는데도 본사는 수도권에 두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조업에 한정하더라도요. 기업은 생산시설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외에도 연구개발이나 각종 서비스직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연구개발 분야가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고 사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할 텐데, 이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우수한 인재를 모으는 게 필수적이겠죠. 그런데 기업이 원하는 그 우수한 인력이 지역 근무를 꺼리는 겁니다. 이들이 보기에는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정주 여건, 문화 기반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고 여겨 일자리가 있어도 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죠. 이러다 보니 연구개발 인력이나 사무직종을 주로 둬야 하는 본사를 수도권에 남겨놓거나 지역에 있다가도 옮겨나는 겁니다. 이는 추가적인 문제를 낳기도 하는데, 지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연구개발이나 사무직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가 지역에 머물 수 없다는 겁니다. 본사가 지역에 없으니, 공장은 내 지역에 있지만 취업은 수도권에 가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울산에 대기업이 많아 좋은 일자리도 많다지만 이는 소수의 생산직에 해당되는 일이고요. 사무직이나 연구직 등 일자리의 다양성은 전혀 확보하지 못하는 게 실상입니다.
5. 기업 본사가 울산이 아닌 곳에 있는 게 지역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준다면서요?
기업이 생산 활동을 하며 수익을 내면 이 중의 일부를 법인세로 냅니다. 법인세는 국세인데, 이 중 10%는 법인세할지방소득세라고 해서 본사가 있는 지역의 지자체에 나눠 줍니다. 그런데 기업이 클 수록 법인세를 엄청난 규모로 내고, 여기서 10%라고 해도 그 액수는 결코 작지 않겠죠. 실제로 대기업들이 내는 세액이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보니까, 울산뿐만이 아니라 지자체마다 본사 유치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6. 처음부터 울산이 본사가 아니었던 기업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울산에 기반을 둔 기업이 본사를 옮기는 것만은 막을 방법이 나와야 할 텐데요.
지역마다 대기업 유치 요구하고 지난 정부에서는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울산의 경우에도 최근에 울주군을 중심으로 해서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에쓰오일 등 울산에 본사를 두지 않은 기업을 상대로 울산으로 본사를 옮기라며 지자체 주도로 주민 서명 운동까지 벌였는데, 결과는 지방선거랑 겹쳐서 적극적인 서명을 받지도 못해 실적도 저조했고, 실제로 기업에 전달도 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끝나 버렸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 본사를 유치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겠죠. 결국 기업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지역에 갖출 수 있느냐가 중요할 걸로 보입니다.
7.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땅값도 싸고 앞서서 모셔가려는 곳도 많아서 좋은 조건일 것 같은데도 굳이 수도권에 본사를 둔다면, 지역 입장에서는 기업들이 본사 이전을 주저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겠네요.
이건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벌였던 ‘기업의 지방 이전 및 지방 사업장 신증설에 관한 의견’ 조사를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152개사가 응답해서 답변의 신뢰성은 꽤 높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목해 봐야 할 조사 질문은 두 가지였는데요. 먼저 본사를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옮길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응답한 기업 중 89.4%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 정도로 기업들이 지역 이전을 꺼리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왜 옮기지 않을까를 생각해봐야 할 텐데, 이 조사에서 물어본 그 다음 질문에 주목해 봐야 하합니다. 이 조사에서는 비수도권의 사업 환경이 해외에 비해 좋은지를 물어봤습니다. 비수도권이 더 좋다는 응답은 35.5%에 불과했고, 절반이 넘는 57.9%가 해외와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이 두 번째 질문의 경우에는 답변 결과도 중요하지만 왜 이걸 물어봤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기업 입장에서도 수도권에 본사를 두는 것은 부동산 비용도 많이 들고 지역 이전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에 원가가 많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면 기업이 원가를 절감하려고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한국 안에서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해외로 나가는 거죠. 비수도권은 말씀하신 것처럼 수도권에 비해서 땅값이나 본사 짓는 비용도 저렴하고요. 지역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기 때문에 세제 혜택이나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같은 국가 안이니까 관련 법률에 대한 이해나 문화적인 충돌 우려도 많지 않겠죠. 그런데도 지역을 택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결국 이 문제도 인력 확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예 우수한 인재를 모시려면 수도권에 머물고, 인건비를 파격적으로 절감하겠다면 차라리 해외로 나가겠다는 겁니다. 지역은 그 가운데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게 기업들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구개발 인력 유치가 절실한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연구개발센터를 수도권에 새롭게 설립하고 있습니다. SK는 경기도 부천에 설립했고요. 수소 기술의 경우 지역에서도 연구가 많이 이뤄져 연구시설을 둬도 될 것 같은데, 두산이 최근에 수소기술 연구시설을 경기도 용인에 짓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울산에 본사가 있던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9년에 법인을 분할하면서 본사를 서울로 옮겨가면서 지역 사회의 반발이 정말 컸죠. 그런데 이 때 본사만 생각하며 올라간 게 아닙니다. 현대중공업이 GRC라는 대규모 연구개발센터를 만들기로 계획했는데, 이걸 경기도 판교에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지금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배를 만드는 생산기지는 울산에 다 있는데도, 배 옆에서 연구하지 않고 굳이 경기도에 연구센터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결국은 인재 채용에서 문제가 되는 걸로 보이는 지점이죠.
8. 이러면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겠는데요.
이런 식으로 대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으로 한 번 몰리기 시작하면 사실 지역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기업이 떠나갔으니 기본적으로 관련된 직원들이 수도권으로 따라서 이주할 거고요. 향후가 더 문제이죠. 지역의 젊은 인구는 취업을 하기 위해 원래 지역에서 교육받고 지역에서 취업했지만 이제는 수도권으로 이주해야 하는거고, 지방은 일자리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겁니다. 이러면 기업이 지역 이주를 더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비수도권으로 본사를 옮긴 대기업에 그동안 해줬던 제도적 지원 수준을 넘어서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방안이 나와야 하고, 이주해 온 인재의 안정적 정착 위한 지원도 필요할 텐데요. 이건 지자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요. 지난 정부에서 지역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법인세를 크게 낮춰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정권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사실 이건 지역에서 이미 다 겪어본 일입니다. 울산에도 마련된 혁신도시 이주 공공기관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되는데요. 기업과 다르게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결정에 따라서 강제로 이주하다시피 했고 직원들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렇게 넘어온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을 데리고 울산에 정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생활 기반을 그대로 수도권에 두고 돈만 벌어가고, 가족들은 남겨두고 직원 혼자만 울산에서 일하다가 어떻게든 수도권으로 돌아가려고 하죠. 심지어 본사에서 근무하는 게 진급이나 여러 면에서 유리한 데도 본사 근무를 꺼리고 지역 사무소 등의 형태로 수도권에 남으려는 직원이 많다고 합니다. 정부가 이전을 강제할 수 있는 공공기관도 이 정도인데, 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기업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